만들 수 없는 반응의 반응열
탄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됩니다. 그런데 산소를 딱 절반만 줘서 일산화탄소까지만 태우려고 하면?
C(s)+21O2(g)→CO(g)
실험실에서 이 반응만 깨끗하게 일으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. 반드시 CO2 가 섞여 나오거든요. 그런데 화학 교재의 표에는 이 반응의 엔탈피 변화가 −110.5 kJ/mol 이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습니다.
측정하지 못한 값이 어떻게 표에 있을까요? 계산한 겁니다. 그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헤스의 법칙입니다.
한 줄 정의
반응의 엔탈피 변화는 어떤 경로를 거치든 같다. 처음 상태와 나중 상태만 같으면 됩니다.
ΔH전체=∑ΔH단계
등산에 비유하면, 산 정상까지의 고도차는 어느 등산로로 올라가든 같은 것과 같습니다. 걸은 거리는 길마다 다르지만 높이차는 하나뿐이죠.
'상태함수'라는 말이 곧 헤스의 법칙입니다
엔탈피 H 는 상태함수입니다. 지금 상태만으로 값이 정해지고, 어떻게 그 상태에 도달했는지는 묻지 않는다는 뜻입니다. 그러니 ΔH=H나중−H처음 은 경로와 무관합니다. 헤스의 법칙은 새로운 법칙이라기보다 상태함수라는 성질을 반응열에 옮겨 적은 것입니다.
왜 되는가 — 경로가 달라도 값이 같은 이유
만약 경로에 따라 ΔH 가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요?
에너지가 적게 드는 경로로 A에서 B로 갔다가, 에너지를 많이 내놓는 경로로 B에서 A로 돌아옵니다. 한 바퀴 돌 때마다 에너지가 공짜로 생깁니다. 열역학 제1법칙(에너지 보존)이 깨집니다.
그래서 상태함수여야만 하고, 그 귀결이 헤스의 법칙입니다. 실험으로 확인된 경험칙이기 이전에 에너지 보존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.
예제로 확인 — 일산화탄소의 생성열
측정 가능한 두 반응만 있으면 됩니다.
(1)C(s)+O2(g)→CO2(g)ΔH1=−393.5 kJ
(2)CO(g)+21O2(g)→CO2(g)ΔH2=−283.0 kJ
둘 다 완전연소라 실험이 깔끔합니다. 목표는 이것이죠.
(목표)C(s)+21O2(g)→CO(g)
목표식에서 CO 는 오른쪽에 있는데 (2)에서는 왼쪽에 있습니다. (2)를 뒤집습니다.
(2’)CO2(g)→CO(g)+21O2(g)ΔH2′=+283.0 kJ
이제 (1) + (2')를 더합니다. 양변에서 CO2 가 상쇄되고, 산소는 1−21=21 만 남습니다.
C(s)+21O2(g)→CO(g)
ΔH=−393.5+283.0=−110.5 kJ
표에 적힌 그 값입니다. 한 번도 그 반응을 시키지 않고 얻었습니다.
더 빠른 길 — 표준생성열
반응식을 짜맞추는 대신, 표준생성열 ΔHf∘ 를 쓰면 한 줄로 끝납니다.
ΔH반응∘=∑nΔHf∘(생성물)−∑nΔHf∘(반응물)
이것도 헤스의 법칙입니다. 모든 물질을 홑원소 물질까지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경로를 택한 것뿐이에요. 그래서 홑원소 물질의 생성열이 0인 겁니다 — 자기 자신에서 자기 자신을 만드는 데는 변화가 없으니까요.
메테인 연소로 확인해 봅시다. CH4+2O2→CO2+2H2O(l)
생성열: CH4 −74.8, CO2 −393.5, H2O(l) −285.8, O2 0
ΔH∘=[(−393.5)+2(−285.8)]−[(−74.8)+0]=−965.1+74.8=−890.3 kJ
여기서 다들 틀립니다 — 함정 3가지
-
뒤집을 때 부호만 바꾸고 계수는 그대로 둔다. 반응식을 n 배 하면 ΔH 도 n 배입니다. 뒤집으면 부호가 반대. 이 둘은 따로 적용됩니다. 2배 하고 뒤집었다면 ΔH→−2ΔH 입니다.
-
상태 표기를 무시한다. H2O(l) 과 H2O(g) 는 다른 물질입니다. 생성열이 −285.8 과 −241.8 kJ/mol 로 약 44 kJ 차이 나는데, 이게 바로 기화열이죠. 연소열 문제에서 답이 44의 배수만큼 어긋난다면 십중팔구 이 문제입니다.
-
생성열 공식의 뺄셈 순서를 뒤집는다. 생성물 − 반응물입니다. 반대로 쓰면 부호가 통째로 뒤집혀 발열이 흡열이 됩니다. 검산은 간단합니다 — 연소 반응인데 ΔH>0 이 나왔다면 순서를 뒤집은 겁니다.
헤스의 법칙은 '일어나는가'를 말해주지 않습니다
ΔH<0 이라고 반응이 저절로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. 자발성은 ΔG=ΔH−TΔS 가 결정하고, 얼마나 빠른지는 활성화 에너지가 결정합니다. 헤스의 법칙은 에너지 수지만 알려줍니다.
정리
- 결론: 엔탈피는 상태함수 → 반응열은 경로와 무관
- 활용: 측정 가능한 반응들을 조합해 측정 불가능한 반응열을 계산
- 조작 규칙: 뒤집으면 부호 반대, n 배 하면 ΔH 도 n 배
- 지름길: 표준생성열로 (생성물 합) − (반응물 합)
헤스의 법칙은 열화학 단원의 계산 문제 대부분이 기대는 토대입니다. 상태함수라는 개념 하나가 잡히면 엔트로피와 깁스 자유에너지로 넘어갈 때도 같은 사고방식이 그대로 쓰입니다.